'신용카드한도증액'에 해당되는 글 1건

  1. * 봐주세요. (금액과 년도는 아직 못적었음)


1997년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을 하여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던중에
어머니의 재혼으로 대학교 근처에서 어머니가 마련해주신 방에서 자취를 하며 따로 나와 살았습니다. (전세 2,000만원)
학생때는 어머니가 보태주시는 용돈으로 지냈으나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게 졸업도 하지않고 학교를 그만둔 저는 때마침 불어닥친 IMF 여파로 뚜렷한 직장도 못잡고
할일없이 빈둥거리며 지냈습니다.
그러던중 서울시 양재동에 위치한 예술의전당에서 DB입력 공공근로요원으로 입사하였습니다.
어느날 찾아온 삼성카드 영원사원의 권유로 삼성카드를 만든 저는 저에게도 신용카드가 생겼다는게
마냥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서 친구들과의 만남 자리에는 꼭 나서서 카드로 결제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공공근로 기간도 만료되고 다시 실직자가 되어
생활비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썼습니다.

남들보다 비만한 몸으로 신체적인 컴플렉스가 심했던 저는 다른 사람에게 웅크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 호기로 카드를 썼습니다.
그러다 저보다 2살 어린 안정현을 만나서 사귀게 되었고 그 사람과의 만남에서
모든 비용을 제가 부담하고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자 노력하였으며
급한일로 필요하다던 거금 300만원을 삼성카드론 대출을 받아 빌려주었습니다.
안정현이 군대를 갔을때 면회를 가서 쓰는 비용은 모두 제 차지였고 용돈까지 안겨주었습니다.
허리가 아프다 하여 휴가때 병원에서 MRI 사진을 찍을때도 비용은 제가 댔습니다.
제대후에 모두 갚아준다고 했던 말을 너무 쉽게 믿었습니다.
제대 얼마 안남아서 그는 저와의 일체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대원조경이란 회사에 경리직을 맡았을때 은행 출입이 잦았던 저는
은행원의 권유로 LG카드, 국민카드등을 신청하였고
카드사에서는 너무도 카드들을 즉시 발급해 주었습니다.
대원조경이 문을 닫게되어 일정한 수입이 없던 저는 급한대로 발급받은 카드들로 돌려막기를 하였고
책대여점 아르바이트, 식당 서빙등을 하면서 돈을 벌긴 했지만 늘어난 대금을 갚기엔 너무 역부족이었습니다.

삼성카드대금은 엘지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막는식의 돌려막기가 계속 되면서
빚은 겉잡을수 없이 불어만 가고 더 이상은 감당할수 없게 되어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하였고
어머니는 저의 결혼자금으로 마련해주신거라던 전세방을 빼서 카드대금을 갚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카드론등의 빚은 남아있었고 그 빚들도 점점 불어나며 저를 조여왔습니다.
어떤 일자리라도 들어가고자 노력했지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고 외모마저 떨어지는 저에게
취업이라는 것은 여의치가 않았고 전 카드빚은 늘어갔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드의 계속적인 이용한도(물품구입 및 현금서비스한도)는 증액되어 또다시 돌려막기 현금서비스를 받게되었습니다.

살빼는게 평생 소원이었던 저는 친구의 권유로 카드를 이용해 제주도에 위치한 단식원도 가고 비만클리닉도 다니며 노력해서
정상의 몸매를 찾았지만 그 기쁨에 또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데 속칭"한턱쏜다"는 개념으로 카드를 썼습니다.
항상 맞는 사이즈의 옷이 없어 주눅들었던 옷가게에서 맘에 드는 옷을 살수 있다는 기쁨으로
쇼핑을 맘껏 하며 철없이 지냈습니다.
다행히 건설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고 성실하게 다니며(월 100만 급여) 조금씩이라도 빚을 갚아나가다가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이별을 하게 되면서 방황을 하는중에
회사도 그만두게 되고 너무도 생각없이 카드를 써댔습니다.(각종 유흥비등)

또 다시 한도가 줄어들어 연체가 될 위기에 처한 저는 어머니께 누를 끼치진 말아야 겠다는 일념으로
카드대금을 벌어보겠다고 노래방 도우미를 하면서 술취한 사람들의 시중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줄어든 한도에 고정적이지 못한 수입은 대금갚기엔 역부족이어서 인터넷으로 알게된 대출회사에 찾아가게 되었고
카드 총한도내에서 얼마든지 돈을 대출해준다는 말에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도 끄고자 대출신청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돈으로 돌려막기를 하며 얼마간 버틸수 있었지만
이미 땅바닥에 떨어진 제 한도로는 더 이상 못버티게 되었고 또 다시 연체에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볼낯이 없어서 집을 나온 저는 고시원을 전전하게 되었고 취업조차 쉽사리 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살까지 생각하는 어둠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저의 이런 허물까지도 한결같이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마음에 감동하여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모든 결혼 비용은 저희 어머니가 대주셨고 전 평생을 다해 갚아나가도 갚지못할 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제 나이 30 젊다면 젊은 나이에 철없는 실수로 앞으로 살아나가게될 몇십년간을 후회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너무 정신없이 적어놨습니다. 이 경위서를 밑바탕으로 해서 년도와 금액 자세한 사항들을 덧붙여 놓을건데요. 이 초안이 괜찮은지 좀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왕자가 사는집 ♡ ♡ 아름다운 날들 ♡ 구제창고 간단시스템 그린존 비전에이스 프로젝트 센트럴 장금이의 웨딩레시피 ☆ 행운을 나눠주는... 타이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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